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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과를 졸업하고도 전기 일을 하지 않았던 이유

by 타이거베컴 2026. 9. 22.

전기과를 졸업하고도 전기 일을 하지 않았던 이유

나는 수도전기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기와 관련된 일을 하기에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학교에서 전기를 배웠고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1992년에 졸업했으니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다. 전기과를 졸업했지만 나는 전기 일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기 일을 하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전기를 피했던 것도 아니다. 졸업하고 나서 인생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기 대신 영업을 선택했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 나는 의무경찰을 지원해서 남대문경찰서에서 30개월 동안 복무했다. 방범순찰대에서도 근무했고 유치장에서도 근무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는 전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당장 사회생활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영업이었다.

처음에는 미국 주방용 칼 회사인 컷코코리아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그런데 영업이라는 일이 생각보다 나에게 잘 맞았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부지점장을 거쳐 지점장까지 올라갔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교보생명에 특채로 입사하게 됐고, 이후에는 부지점장으로 근무했다. 그다음에는 KB생명에서도 지점장으로 일했다.

돌이켜보면 영업 일을 참 오래 했다. 교보생명과 KB생명에서만 15년 넘게 근무했고, 그 외에도 오피스텔 분양이나 지식산업센터 분양, 네트워크 마케팅 등 여러 가지 영업 일을 경험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전기기능사 자격증은 내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져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어렵게 취득했던 자격증인데 실제로는 한 번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자격증을 볼 때면 '내가 전기과를 나왔는데 왜 전기 일을 안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영업이라는 일이 싫지 않았고, 나름대로 그 안에서 성취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영업직은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약속이 없는 시간에는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골프를 치기도 했다. 지금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50대가 되어 다시 전기와 만나게 되다

그렇게 여러 일을 하면서 살다가 2020년 2월 1일 전기공사업체에 입사하게 됐다.

정말 오랜만에 전기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다시 등장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생활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영업을 오래 하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답답하지?'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기공사업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우리 회사는 주로 관공서 전기공사를 하고 있었고 한국전력공사와 관련된 공사도 많이 진행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취득했던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다시 보게 됐다.

회사 업무를 하다 보니 특정 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술자가 관련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하나씩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기 시작했다.

가공배전, 무정전, 지중배전, 변전전기원 2급, 철도안전전문인력 전기철도 분야까지 취득했다.

4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다시 공부하고 실습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특히 가공배전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12m 높이의 전봇대를 올라가야 했을 때는 정말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했다. 다행히 여러 자격증을 모두 한 번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내가 20년 넘게 영업을 하다가 다시 전기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기과를 졸업했지만 전기 일을 하지 않았던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업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고 조직을 관리하는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경험에 전기라는 기술이 하나 더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나처럼 오래전에 전공이나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아쉬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몇 년이 지나고, 아니 몇십 년이 지나서 다시 그 지식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전기과를 졸업하고 전기 일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전기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내 인생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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